네 사람의 수행자가 나무 밑에 앉아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괴롭고 고통스러운 일인가’에 대해서
저마다 자기 소견을 펼쳤다.
한 수행자가 말했다.
“이 세상의 괴로움 가운데서 이성에 대한 욕구보다
더 괴로운 것은 없을 것이다.”
또 한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화내는 일보다 더 괴로운 것은 없을 걸.”
또 한 사람이 말했다.
“이 세상의 괴로움 중에서 배고프고 목마른 것보다
더 괴로운 일이 있을라고?”
네 번째 사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건 다 모르는 소리. 모든 괴로움 가운데서도
불안과 공포보다 더 괴로운 것은 없을거야.”
이와 같이 괴로움에 대해서 그들은 서로 자기주장을 내세웠다.
이때 부처님께서 그 옆을 지나다가,
“무슨 일로 서로 다투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은 일어나 예배드린 뒤 이야기 내용을 말씀드렸다.
부처님께서는 그들의 말을 듣고 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아직 괴로움의 뜻을 온전히 모르고 있다.
이 몸보다 괴로운 것은 없느니라.
배고프고 목마른 것과 추위와 더위, 미워하고 화내는 것,
놀라고 두려워하는 것, 색욕과 원한도 모두 이 몸이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이 육신이란 모든 괴로움의 근원이며 재난의 뿌리다.
우리들의 마음을 괴롭히고 애를 태우며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것과
중생들이 서로 해치면서 다투는 것이 이 몸 때문이다.
그러므로 온갖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적멸(寂滅)즉, 열반을 구해야 한다.
생각을 거두어들여 여러 가지 욕망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열반에 이를 수 있다.
그것이 가장 즐거운 일이다.”
부처님께서는 다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음욕보다 더한 불길이 없고 성냄보다 더한 독이 없으며
이 몸보다 더한 괴로움 없고 열반보다 더한 즐거움 없네.
조그만 즐거움과 미미한 말재주 반딧불만한 지혜로 그치지 말고
모든 것을 살펴 큰 것을 구하라. 그래야 비로소 큰 기쁨 얻느니라.
★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자(尺度)로 세상을 재고 인생을 재려한다.
그래서 그 자가 표준인 것처럼 착각하기 쉽다.
그리고 사람들은 저마다 남이 넘어다 볼 수 없는 우수(憂愁)의 뜰을 지니고 있다.
그것이 곧 그 사람의 무게일 수도 있다.
육신의 비애!, 육신이 우리들의 현존(現存)이기 때문에
온갖 모순과 갈등 속에서 부침(浮沈)한다.
그렇다. 이 모순과 갈등이 있음으로 해서
우리는 또한 본질적인 자유와 평화를 갈구하게 된다.
중생이 없으면 부처도 없다는 표현은 우리 안에 갈등과 모순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적인 노력이 따른다는 뜻을 내포한다.
열반(涅槃)이란 원래 뜻은 번뇌의 불을 꺼버린 평온한 상태를 가리킨 말이다.
모순과 갈등에서 벗어나는 것을 해탈이라 하고, 그 해탈의 경지가 곧 열반이다.
그러니까 요즘 말로 하면,
해탈은 자유를 가리키고 열반은 평화를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괴롭고 고통스러운 일인가’에 대해서
저마다 자기 소견을 펼쳤다.
한 수행자가 말했다.
“이 세상의 괴로움 가운데서 이성에 대한 욕구보다
더 괴로운 것은 없을 것이다.”
또 한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화내는 일보다 더 괴로운 것은 없을 걸.”
또 한 사람이 말했다.
“이 세상의 괴로움 중에서 배고프고 목마른 것보다
더 괴로운 일이 있을라고?”
네 번째 사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건 다 모르는 소리. 모든 괴로움 가운데서도
불안과 공포보다 더 괴로운 것은 없을거야.”
이와 같이 괴로움에 대해서 그들은 서로 자기주장을 내세웠다.
이때 부처님께서 그 옆을 지나다가,
“무슨 일로 서로 다투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은 일어나 예배드린 뒤 이야기 내용을 말씀드렸다.
부처님께서는 그들의 말을 듣고 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아직 괴로움의 뜻을 온전히 모르고 있다.
이 몸보다 괴로운 것은 없느니라.
배고프고 목마른 것과 추위와 더위, 미워하고 화내는 것,
놀라고 두려워하는 것, 색욕과 원한도 모두 이 몸이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이 육신이란 모든 괴로움의 근원이며 재난의 뿌리다.
우리들의 마음을 괴롭히고 애를 태우며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것과
중생들이 서로 해치면서 다투는 것이 이 몸 때문이다.
그러므로 온갖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적멸(寂滅)즉, 열반을 구해야 한다.
생각을 거두어들여 여러 가지 욕망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열반에 이를 수 있다.
그것이 가장 즐거운 일이다.”
부처님께서는 다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음욕보다 더한 불길이 없고 성냄보다 더한 독이 없으며
이 몸보다 더한 괴로움 없고 열반보다 더한 즐거움 없네.
조그만 즐거움과 미미한 말재주 반딧불만한 지혜로 그치지 말고
모든 것을 살펴 큰 것을 구하라. 그래야 비로소 큰 기쁨 얻느니라.
★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자(尺度)로 세상을 재고 인생을 재려한다.
그래서 그 자가 표준인 것처럼 착각하기 쉽다.
그리고 사람들은 저마다 남이 넘어다 볼 수 없는 우수(憂愁)의 뜰을 지니고 있다.
그것이 곧 그 사람의 무게일 수도 있다.
육신의 비애!, 육신이 우리들의 현존(現存)이기 때문에
온갖 모순과 갈등 속에서 부침(浮沈)한다.
그렇다. 이 모순과 갈등이 있음으로 해서
우리는 또한 본질적인 자유와 평화를 갈구하게 된다.
중생이 없으면 부처도 없다는 표현은 우리 안에 갈등과 모순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적인 노력이 따른다는 뜻을 내포한다.
열반(涅槃)이란 원래 뜻은 번뇌의 불을 꺼버린 평온한 상태를 가리킨 말이다.
모순과 갈등에서 벗어나는 것을 해탈이라 하고, 그 해탈의 경지가 곧 열반이다.
그러니까 요즘 말로 하면,
해탈은 자유를 가리키고 열반은 평화를 뜻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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